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5년 전, 군대에서 엄마의 면회를 기다리며 홀로 생활관에서 TV를 보면서 처음 듣게 된 단어이다.
TV에서 강연하시는 카이스트의 배상민 교수님이 미남이셔서 그런지, 적정기술이라는 컨셉의 매력에 빠져서였는지 그 날이 잊히질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술을 개발한다고? 이래 멋지게 살 수 있다고?"

전문계 고등학교(지금은 특성화 고등학교)를 다니며 공학을 전공하고 당연하게도 대학까지 공돌이로써의 임무에 충실하던 나에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적정기술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 친구들과 친환경 자동차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에는 친구들과 밤새고 대회를 나가는 것이 목표였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이 때의 경험 덕분에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단 손으로 직접 해 볼 수 있었던 정말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대학생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친환경 자작자동차 연구실 활동>

대학교 4학년. 말로만 적정기술을 말 할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소외된 90%를 위한 창의설계 경진대회 공모전'의 포스터. 아는 동생의 권유로 학교에서 관심있는 학생들을 모아 공모전을 준비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바로 주제선정. 나는 그 사람들의 입장에 서 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들이 무엇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웠다.
여러 회의 끝에 결정된 주제는 '장애인들이 본인들을 스스로 PR하고, 그것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상태에서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이었다. 자료를 모으고,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것까직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준비하면서 힘들다는 것은 느끼지 못했다. 아쉽게도 수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준비했던 어떠한 것들 중에 손가락 안에 꼽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적정기술을 처음으로 접해봤던 공모전>

공대를 다니는 분들이면, 아니 어쩌면 모든 대학의 졸업생들은 느낄 것이다. 졸업 예정자의 숨막히는 하루하루를... 옆에선 벌써 취업한 친구들, 자소서 쓰느라 밤 새는 친구들, 여기저기 기업정보를 알아보느라 다크써클이 땅을 치는 친구들까지. 그들 사이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선 밖으로 나가서 직접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때부터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이곳저곳으로 알아봤다. 교수님들께 상담신청도 하고 인터넷으로도 많은 정보를 알아보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적정기술'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진 보이지 않았다. 교수님들께서도 우선 대학원 진학하는 것을 많이 추천해주셨다. 하지만 공모전을 하면서 무엇을 깨달았는가.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우선 그들의 삶을 경험하고싶었다. 그러고나서 공부가 필요하다면 공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 앞에 뚜렷한 목표는 보이지 않았고, 그냥 하루하루 영어 회화만 공부하며 아마도 우리 학교에서 가장 여유로웠던 4학년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4학년 1학기.
적정기술 공모전의 지도교수를 해주셨던 한 교수님께서 소식을 전해주셨다. 탄자니아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에서 사람을 뽑는다더라. 그냥 '적정기술' 단어가 들어있는 센터라는 이유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지원 공고문부터 훑어보았다.
 - 지원조건: 학사 이상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바로 아래 적혀있는 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나는 지금 4학년이고, 정말정말 가고싶다고. 내가 센터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졸업하면 안되겠냐고.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바보같은 요청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안된다는 메일이었다. 너무너무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쉬웠지만 탄자니아 센터와의 인연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9월 20일 수요일. 정확히 내 생일. 내 인생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지금까지의 좋든 싫든 나의 인생을 좌우했던 하루.
공대 졸업의 꽃인 졸업작품!!
우리는 역시 2년간 연구한 친환경 자동차를 졸업작품으로 출품했고 운이 좋게도 학부에서 우수작으로 선정이 되었다. 우리 연구실 친구들은 취업준비하느라 바쁘고... 당일날 발표는 가장 한가했던(?) 내가 하게 되었다.
한창 쉬고있던 도중, 미국에서 오신 부부께서 우리의 작품을 보러 오셨단다. 나는 우리가 했던 것들에 대해 설명했다. 그 인상좋던 부부는 우리가 직접 설계하고 만든 것인지 물어보았다. 어휴~ 그럼요. 설계부터 제작까지 다 했다고 자랑했다. 그 때, 남편분께서 나에게 명함을 하나 건네주셨다.
 직함은 '탄자니아 적정과학기술 거점센터 센터장'
 '어...? 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벙쪄있던 내 옆에서 친구가 거들었다.
얘가 지원했다가 떨어졌다고. 엄청 가고싶어한다고. (고맙다 민수야)

그렇게 드디어.... 취업(?)이.... 되었다.
졸업작품 경진대회 때의 놀라운 만남의 순간



'지극히 주관적인' 적정기술에 대하여(1)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5년 전, 군대에서 엄마의 면회를 기다리며 홀로 생활관에서 TV를 보면서 처음 듣게 된 단어이다.
TV에서 강연하시는 카이스트의 배상민 교수님이 미남이셔서 그런지, 적정기술이라는 컨셉의 매력에 빠져서였는지 그 날이 잊히질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술을 개발한다고? 이래 멋지게 살 수 있다고?"

전문계 고등학교(지금은 특성화 고등학교)를 다니며 공학을 전공하고 당연하게도 대학까지 공돌이로써의 임무에 충실하던 나에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적정기술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 친구들과 친환경 자동차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에는 친구들과 밤새고 대회를 나가는 것이 목표였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이 때의 경험 덕분에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단 손으로 직접 해 볼 수 있었던 정말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대학생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친환경 자작자동차 연구실 활동>

대학교 4학년. 말로만 적정기술을 말 할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소외된 90%를 위한 창의설계 경진대회 공모전'의 포스터. 아는 동생의 권유로 학교에서 관심있는 학생들을 모아 공모전을 준비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바로 주제선정. 나는 그 사람들의 입장에 서 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들이 무엇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웠다.
여러 회의 끝에 결정된 주제는 '장애인들이 본인들을 스스로 PR하고, 그것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상태에서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이었다. 자료를 모으고,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것까직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준비하면서 힘들다는 것은 느끼지 못했다. 아쉽게도 수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준비했던 어떠한 것들 중에 손가락 안에 꼽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적정기술을 처음으로 접해봤던 공모전>

공대를 다니는 분들이면, 아니 어쩌면 모든 대학의 졸업생들은 느낄 것이다. 졸업 예정자의 숨막히는 하루하루를... 옆에선 벌써 취업한 친구들, 자소서 쓰느라 밤 새는 친구들, 여기저기 기업정보를 알아보느라 다크써클이 땅을 치는 친구들까지. 그들 사이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선 밖으로 나가서 직접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때부터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이곳저곳으로 알아봤다. 교수님들께 상담신청도 하고 인터넷으로도 많은 정보를 알아보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적정기술'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진 보이지 않았다. 교수님들께서도 우선 대학원 진학하는 것을 많이 추천해주셨다. 하지만 공모전을 하면서 무엇을 깨달았는가.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우선 그들의 삶을 경험하고싶었다. 그러고나서 공부가 필요하다면 공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 앞에 뚜렷한 목표는 보이지 않았고, 그냥 하루하루 영어 회화만 공부하며 아마도 우리 학교에서 가장 여유로웠던 4학년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4학년 1학기.
적정기술 공모전의 지도교수를 해주셨던 한 교수님께서 소식을 전해주셨다. 탄자니아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에서 사람을 뽑는다더라. 그냥 '적정기술' 단어가 들어있는 센터라는 이유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지원 공고문부터 훑어보았다.
 - 지원조건: 학사 이상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바로 아래 적혀있는 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나는 지금 4학년이고, 정말정말 가고싶다고. 내가 센터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졸업하면 안되겠냐고.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바보같은 요청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안된다는 메일이었다. 너무너무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쉬웠지만 탄자니아 센터와의 인연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9월 20일 수요일. 정확히 내 생일. 내 인생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지금까지의 좋든 싫든 나의 인생을 좌우했던 하루.
공대 졸업의 꽃인 졸업작품!!
우리는 역시 2년간 연구한 친환경 자동차를 졸업작품으로 출품했고 운이 좋게도 학부에서 우수작으로 선정이 되었다. 우리 연구실 친구들은 취업준비하느라 바쁘고... 당일날 발표는 가장 한가했던(?) 내가 하게 되었다.
한창 쉬고있던 도중, 미국에서 오신 부부께서 우리의 작품을 보러 오셨단다. 나는 우리가 했던 것들에 대해 설명했다. 그 인상좋던 부부는 우리가 직접 설계하고 만든 것인지 물어보았다. 어휴~ 그럼요. 설계부터 제작까지 다 했다고 자랑했다. 그 때, 남편분께서 나에게 명함을 하나 건네주셨다.
 직함은 '탄자니아 적정과학기술 거점센터 센터장'
 '어...? 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벙쪄있던 내 옆에서 친구가 거들었다.
얘가 지원했다가 떨어졌다고. 엄청 가고싶어한다고. (고맙다 민수야)

그렇게 드디어.... 취업(?)이.... 되었다.
졸업작품 경진대회 때의 놀라운 만남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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